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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주도·일반 여행기사

신이 살던 섬, 제주의 신화와 전설을 걷다

설문대할망의 치마폭에서 태어난 섬, 오백장군의 통곡이 새겨진 영실의 바위까지 — 제주 신화와 전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8월 특집 두 번째 이야기.

Odin ParkJournalist
신이 살던 섬, 제주의 신화와 전설을 걷다

여는 글: 돌 하나에도 이야기가 있다

제주에서는 오름 하나, 바위 하나에도 함부로 지나칠 수 없는 사연이 붙어 있다. 지난 글에서 우리는 이 섬 전체를 큰 걸음으로 조망했다. 이번에는 걸음을 늦추고, 섬의 가장 오래된 뿌리인 신화와 전설 속으로 들어가 본다. 이 섬을 빚었다는 거인, 자식을 위해 목숨을 내어준 어머니, 하늘에서 씨앗을 가져온 여신까지. 제주의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크고, 슬프고, 다정하다.

1. 땅을 빚은 거인, 설문대할망

제주 신화의 첫 장은 언제나 설문대할망이다. 몸집이 얼마나 컸는지, 치마폭에 흙을 담아 옮기는 것만으로 바다 위에 섬 하나를 만들어냈다는 여신. 흙을 나르다 흘러내린 자리마다 크고 작은 오름이 솟아났고, 마지막으로 가장 높이 쌓아 올린 자리가 지금의 한라산이 되었다고 전해진다.

전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. 할망이 한라산 꼭대기를 손으로 뚝 잘라 던지자, 잘려나간 자리는 백록담이 되었고 던져진 조각은 섬 서남쪽 바다 앞에 떨어져 산방산이 되었다. 오늘 한라산에 오르고 산방산을 지나칠 때, 우리는 사실 한 거인의 손끝이 남긴 흔적 위를 걷고 있는 셈이다. 창조신이면서도 제주 신화체계에서 가장 높이 받들어졌던 절대신, 설문대할망은 그렇게 이 섬 자체가 되었다.

2. 오백장군의 통곡, 영실의 기암

한라산 남서쪽,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늘어선 영실에는 설문대할망 신화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저릿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.

할망에게는 오백 명의 아들이 있었다. 어느 해 흉년이 들어 아들들이 저마다 양식을 구하러 나가고, 할망은 아들들에게 먹일 죽을 홀로 끓이고 있었다. 그러다 발을 헛디뎌 그만 가마솥 속에 빠지고 말았다. 양식을 구해 돌아온 아들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어머니가 끓여둔 죽을 나누어 먹었다. 가장 늦게 돌아온 막내가 죽 속에서 어머니의 뼈를 발견하고서야, 형들은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깨달았다.

형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다 그대로 굳어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. 지금 영실에 늘어선 기암을 사람들은 오백장군이라 부른다. 자식을 살리려 했던 어머니의 마음과, 그 사실을 알고 무너져 내린 자식들의 슬픔. 제주의 전설은 이렇게 신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건드린다.

3. 하늘에서 씨앗을 가져온 여신, 자청비

제주에는 땅을 빚은 신만 있는 게 아니다. 서사무가 「세경본풀이」의 주인공 자청비는 파란만장한 곡절 끝에 하늘 옥황에 올라 오곡의 씨앗을 얻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다. 그렇게 자청비는 농사를 관장하는 세경신이 되었다.

지금도 제주 밭에서 점심을 먹기 전, 밥 한 술을 먼저 땅에 던지는 '고시레'의 풍습에는 자청비를 향한 오래된 감사가 담겨 있다. 신화 속 여신이 여전히 매일의 밥상 앞에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, 이것이 제주 신화가 살아있는 이유다.

4. 첫 사람들의 이야기, 삼성신화

땅을 빚은 신들의 이야기 다음에는, 사람이 태어난 이야기가 온다. 태초에 아무도 없던 이 땅, 한라산 북쪽 기슭의 구멍 모흥혈에서 세 신인이 솟아났다는 삼성신화. 고씨, 양씨, 부씨의 시조가 이곳에서 태어나 섬의 첫 사람들이 되었다고 전해진다.

신이 땅을 만들고 그 땅에서 사람이 태어났다는 이 순서는, 제주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설명해왔는지를 보여준다. 이 섬은 처음부터 신의 손길과 사람의 발걸음이 함께 새겨진 곳이었다.

닫는 글: 여전히 이야기하고 있는 섬

한라산의 봉우리, 영실의 바위, 밭에서 흩날리는 밥 한 술까지. 제주는 지금도 신화를 이야기하고 있다. 이번 여름, 이 섬을 걷는다면 발밑의 돌 하나, 눈앞의 오름 하나에도 잠시 멈춰 서보길 바란다. 그 자리에는 어쩌면 우리가 아직 모르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.

다음 편에서는 이 신화들이 어떻게 제주의 상징, 즉 돌하르방과 삼다도 같은 오늘의 얼굴로 이어졌는지를 따라가 본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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